중국 동부에 위치한 상하이는 단순한 도시가 아닌, 경제·문화·역사적으로 중국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쯔강 하구에 위치한 이 도시는 고대부터 해상 교역의 요충지였고, 청나라 이후에는 서구 열강의 조계지가 형성되며 중국 최초의 근대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상하이의 음식문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며, 지역 전통에 서양 조리법이 절묘하게 결합된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냈습니다.
상하이 음식, 즉 **화이양요리(淮扬菜)**와 구분되는 **상하이 본토 요리(本帮菜)**는 일반적으로 달고 기름진 맛, 간장의 깊은 풍미, 정갈한 플레이팅이 특징입니다. 특히 샤오롱바오, 상하이식 생선조림, 상하이냉면은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의 입맛까지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 세 가지 상하이 대표 음식의 유래, 조리방식, 역사, 그리고 현대적 진화를 통해 상하이라는 도시의 미식 정체성을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샤오롱바오: 국물로 맛을 채우다
샤오롱바오(小笼包)는 상하이 음식의 정수를 담은 대표적인 딤섬입니다. 겉보기엔 단순한 찐만두지만, 그 안에는 국물과 속이 꽉 찬 ‘기술과 정성의 결정체’가 담겨 있습니다.
샤오롱바오의 유래는 1870년대 상하이 근처의 난샹(南翔)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됐습니다. 전통적인 만두에서 벗어나, 육즙이 입안에 터지는 만두를 만들고자 했던 요리사들이 육수 젤라틴을 만두소에 넣는 방식을 개발한 것이 샤오롱바오의 시작입니다. 젤라틴 형태의 고기 육수를 냉각 후 고기 속에 넣고, 만두를 찐 후 내부에서 육수가 녹아 나오게 만드는 고도의 기술이 요구됩니다.
반투명한 얇은 만두피는 10~18개의 주름으로 감싸져야 전통적이라 여겨지며, 찜기에 넣어 8분 내외로 빠르게 쪄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먹는 방법 또한 중요합니다. 먼저 윗부분을 깨물어 육즙을 빨아들이고, 그 후 나머지를 간장과 생강에 찍어 먹는 방식이 전통입니다.
샤오롱바오는 상하이 전통의 정성과 기술력, 그리고 ‘정제된 대중성’을 모두 갖춘 음식입니다. 현대에는 다양한 변형이 등장하고 있으며, 게살, 새우, 표고버섯 등을 넣은 고급 샤오롱바오도 등장했고, 일본과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메뉴로 확산되었습니다.
세계 미식가들 사이에서도 상하이를 방문하면 반드시 먹어봐야 할 음식으로 손꼽히며, 단순한 간식을 넘어 문화적 상징성과 세계적 확산성을 동시에 갖춘 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상하이식 생선조림: 느림의 미학, 농밀한 맛
상하이식 생선조림(红烧鱼)은 단순한 생선 요리가 아닌, 상하이 전통의 조리 철학이 가장 잘 반영된 음식 중 하나입니다.
‘홍사오(红烧)’는 간장, 설탕, 샤오싱주(술), 생강, 파, 마늘 등을 넣고 오래 조려내는 방식으로, 상하이 요리의 핵심 기법입니다. 특히 생선조림은 이런 조리법이 정교하게 적용된 대표적인 가정식이자 잔칫상 음식입니다. 주로 잉어나 농어를 통째로 사용하며, 생선이 부서지지 않도록 매우 정교하게 다루어야 하기에 요리사의 기술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메뉴입니다.
상하이식 생선조림의 특징은 단연코 그 ‘윤기’와 ‘색감’입니다. 간장과 설탕을 졸인 깊은 갈색의 양념이 생선에 입혀지면서, 단짠의 조화가 극대화됩니다. 또한, 이 요리는 ‘재탕’을 허용하지 않는 미덕이 있으며, 즉석에서 갓 졸여내야 제맛이 난다고 여깁니다.
이 음식은 상하이의 사회문화적 가치관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준다’는 전통사상에 따라, 생선조림은 명절, 제사, 가족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입니다.
현대 상하이에서는 생선조림을 소형 생선으로 변형하거나, 뼈 없는 생선살을 이용한 퓨전 메뉴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중시하는 트렌드에 따라 감미료나 저염 간장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본질적인 정성과 조리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슬로우 푸드’의 전형적인 예시로 국제 미식계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상하이냉면: 더위와 싸우는 여름철 국민음식
상하이냉면(上海冷面)은 상하이 여름을 대표하는 계절 음식으로, 담백함 속의 깊은 감칠맛과 쫄깃한 식감으로 오랜 시간 사랑받아왔습니다.
상하이는 여름이 길고 무더운 기후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상하이냉면은 이 지역의 생활 방식과 기후 환경에 적응해 탄생한 매우 실용적인 음식입니다. 원래는 남부 해안가 어민들이 더운 날 간단히 먹기 위해 만들었던 국수에서 발전하였으며, 이후 1950년대 상하이 노점문화와 함께 대중화되었습니다.
이 냉면은 고추기름 없이 맵지 않으며, 간장, 참기름, 식초, 설탕으로 만든 간단하지만 정교한 소스를 사용합니다. 면은 삶은 후 찬물에 식혀 쫄깃한 식감을 살리고, 다양한 고명—달걀, 오이채, 햄, 건새우, 땅콩 등—을 올려 마무리합니다. 상하이냉면은 시원하고 상쾌한 맛 외에도 ‘오미(五味)’의 조화가 매우 뛰어난 음식으로 평가받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포장 냉면 제품이나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간편식으로도 대중화되었으며, 현지뿐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상하이 출신들이 즐겨 찾는 향토 음식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여름철이면 각 가정마다 자신만의 냉면 레시피를 공유하는 문화도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세대 간 전승되는 생활의 지혜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상하이냉면은 겉은 단순하지만, 그 속에는 상하이인의 실용성과 섬세함, 그리고 계절과 삶에 적응해 온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상하이음식, 근대성과 전통이 공존하는 테이블 위의 도시
상하이의 대표 음식인 샤오롱바오, 생선조림, 상하이냉면은 그 자체로 미식적 완성도가 높은 음식이지만, 그 이상으로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 생활 문화가 녹아 있는 중요한 문화 코드입니다. 샤오롱바오는 도시의 정교함과 세계화를, 생선조림은 가족 중심 문화와 느림의 미학을, 상하이냉면은 실용성과 생활 지혜를 상징합니다.
상하이음식은 서양문화와의 접점에서 탄생한 중국식 근대화의 결과물이며, 여전히 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유연하게 진화해 왔습니다. 이 도시의 음식들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화적 유산이며, 상하이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앞으로 상하이를 방문하거나 중국음식에 관심이 있다면, 이 세 가지 음식을 반드시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 속에서 상하이라는 도시의 근대성과 감성, 그리고 정교한 문화적 층위를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