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는 한국 음식문화의 큰 전환기를 이룬 시기입니다. 통일신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종교와 외래문화의 유입, 정치·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라 음식의 내용과 형식이 다양해졌습니다. 특히 불교가 국교로 자리 잡으면서 채식 위주의 식생활이 사회 전반에 퍼졌고, 귀족 중심의 사회 구조 속에서 화려한 연회 음식과 잔치 음식도 함께 발달했습니다. 또 고려는 송나라, 거란, 원나라 등과 교류하며 다양한 외래 식문화도 받아들였으며, 이는 고려만의 독창적인 음식문화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고려시대 음식문화를 불교의 영향과 채식문화, 귀족 사회의 잔치 음식과 향유 방식, 민중의 일상식과 음식 실용성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깊이 있게 분석하고자 합니다.
불교의 영향과 고려의 채식 식생활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불교를 국교로 삼아 강력한 국가 운영 이념으로 채택했습니다. 이로 인해 고려 사회 전반에는 불교적 가치관이 강하게 작용했으며, 이는 음식문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표적으로 육식을 지양하고, 살생을 피하는 불교 교리에 따라 채식 위주의 식생활이 확산되었습니다.
고려시대 사찰에서는 수행자들을 위한 정갈한 사찰음식이 발달했습니다. 채소, 두부, 버섯, 나물, 곡물 등을 활용한 음식들이 주를 이뤘으며,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오신채)는 삼가야 할 식재료로 여겨졌습니다. 이를 대신해 다시마, 들깨, 된장, 고추장 같은 자연 식재료로 맛을 내는 조리법이 발전했습니다. 이때 발전된 ‘된장국’, ‘나물무침’, ‘밥상 다반찬’ 등의 기본 구조는 오늘날 한식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사찰음식 외에도 불교행사나 절기 때는 공양(供養)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 공양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수행의 일환이며, 음식을 만드는 이의 마음가짐 또한 중요한 수행 요소였습니다. 고려 불교는 선종과 교종이 함께 발전하던 시기로, 각 사찰마다 지역적 특색이 반영된 음식문화가 형성되었고, 이는 향토 음식문화의 기틀을 닦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고려시대의 채식은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것’ 이상으로, 도덕적, 영적 의미를 담은 삶의 실천이었습니다. 또한 국왕도 재위 중 불교행사나 공양 때는 채식만을 섭취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실천이 있었으며, 이는 당시 음식문화의 강한 종교적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귀족 중심의 연회 음식과 미식 문화
고려는 왕실과 귀족 중심의 계급 사회로, 상류층을 중심으로 한 화려한 음식문화가 발달했습니다. 특히 고려 후기로 갈수록 귀족과 관료층의 권력이 강화되며, 잔치와 연회가 빈번히 열렸고 이를 위한 고급 음식들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고려 귀족들은 사치와 품위를 음식으로 표현했고, 이는 곧 음식의 다양성과 조리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귀족 연회에서는 다과와 전골, 술안주류가 정성스럽게 준비되었으며, 고기와 생선, 각종 곡식, 과일, 떡, 전통주 등이 함께 제공되었습니다. 고려 후기 문헌인 《고려사》에는 왕실이나 상류층에서 ‘구이, 찜, 볶음, 지짐, 조림’ 등의 조리법이 다양하게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있습니다. 특히 고기는 소·돼지·닭은 물론, 꿩, 사슴, 멧돼지 같은 야생육도 사용되었고, 이를 숯불에 구워 먹는 숯불구이 문화도 존재했습니다.
고려 귀족들은 식사 자체를 하나의 문화로 즐겼습니다. 향신료를 통한 풍미 강조,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식재료 선택, 장류나 젓갈, 엿, 꿀 등을 이용한 깊은 맛의 요리 등이 특징적이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술 문화도 함께 발전했으며, 전통 곡주인 ‘막걸리’, ‘청주’, ‘약주’ 외에도 외래 기술을 적용한 발효주도 만들어졌습니다.
왕실에서는 **진연(進宴)**이라는 공식 잔치를 열었고, 이때는 각 지방에서 진상된 특산물로 식탁을 꾸몄습니다. 예를 들어 동해안에서는 해산물, 남해안에서는 해조류, 북부 지방에서는 사슴고기, 내륙에서는 산채나 버섯 등이 왕의 식탁에 올랐습니다. 이로 인해 귀족 식단은 매우 풍부하고 화려했으며, 그 과정에서 음식이 권력의 상징으로 기능하기도 했습니다.
고려의 미식 문화는 그 자체로 사치와 교양의 상징이자, 상류계층의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로, 이후 조선 초기 궁중음식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민중의 일상식과 실용적인 음식문화
반면 민중의 식사는 궁중이나 귀족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고려시대 서민들은 농업과 수공업에 종사하며 대부분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했고, 그들의 식사는 간결하고 실용적인 구성이 특징이었습니다. 기본적인 식사는 보리, 조, 수수, 콩, 팥 같은 잡곡으로 지은 밥에 된장국이나 물김치, 나물무침이 곁들여졌습니다.
서민 식단의 중심은 **‘밥과 국, 장과 김치’**로 구성되었으며, 육류나 고급 식재료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단백질은 주로 콩이나 두부, 간혹 생선이나 말린 오징어, 멸치 등을 통해 보충했습니다. 고려시대에도 각 가정마다 장독대를 두고 직접 된장, 간장, 고추장을 담갔으며, 이는 오랜 세월 가정의 정체성을 담는 공간으로 기능했습니다.
고려 후기에는 김치가 단순한 저장식에서 양념을 더한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무, 배추, 부추 등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김치가 등장했습니다. 또한 ‘죽’ 문화도 매우 발달해, 쌀죽, 팥죽, 잣죽, 호박죽, 콩죽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죽이 보편적인 끼니로 활용되었습니다.
명절이나 제사, 혼례 등 특별한 날에는 떡, 전, 탕국, 부침 등이 준비되었으며, 서민들 역시 잔치 음식을 통해 공동체와 가족 간의 결속을 다졌습니다. 이때 사용된 식재료나 조리법은 궁중과는 다르지만 지역적 특색이 강하게 반영된 향토음식의 원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고려시대 민중의 음식문화는 실용성과 생존을 바탕으로 하되, 공동체적 삶의 방식 속에서 음식을 나누고, 절기와 계절에 따라 식단을 조절하는 지속가능한 식생활 모델로서 기능했습니다.
고려의 밥상, 실용과 사상이 만난 역사적 음식문화
고려시대의 음식문화는 단순한 조리 방식의 발전을 넘어, 종교, 계급, 정치, 철학이 모두 반영된 총체적 문화였습니다. 불교의 영향으로 채식이 생활화되고, 귀족 사회에서는 사치와 미식이 교양의 일부로 발전했으며, 민중들은 자급자족 속에서 절제된 식문화를 구축했습니다.
고려의 밥상은 단지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자 시대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창이었습니다. 음식은 사람을 나타내는 수단이었고,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분, 지위, 지역적 정체성이 드러났습니다.
오늘날 한국 음식문화의 많은 요소들이 고려시대에서 유래되었으며, 고려의 음식문화는 ‘한식’이라는 이름으로 계승되어 글로벌 미식 세계 속에서도 한국만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려의 음식은 단순한 과거가 아닌, 지금 우리의 밥상 속에 살아 있는 전통이자 철학입니다.